종교 비판

달란트 비유(마25:14~30)의 무익한 종과 수종들기 비유(눅17:7~10)의 무익한 종의 구분 / 보냄의 의미· 맡김의 의미

통밀가루 2024. 7. 11. 12:06
누가복음
17: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17: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17: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17: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17: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17: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마태복음
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25: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25: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5: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5: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5: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25:26, 30의 악하고 게으른 종은 (유익해도) 무익한 종이고 21, 23절의 착하고 충성된 종은 (무익해도) 유익한 종인데 이들이 신의 아들들이다. 또 한 아들 안에 이 두 종(천당 지옥) 됨이 다 있어서 전자를 선택하면 선인 善從이 되고 후자를 선택하면 악인 惡從이 된다. 달란트는 세상이다. 주인이 타국에 간다(하늘이 하늘에 감 하늘이 세상을 떠남)는 것은 그이의 괴로움이다. 이에 종(아들)이 참여하면 종도 괴로움을 당한다. 주인이 귀국한다(하늘이 하늘을 떠남 하늘이 세상에 옴)는 것은 그이의 즐거움이다. 이에 종이 참여(21, 23절)하면 종도 즐거움을 당한다. 주인이 주인의 소유를 종에게 맡긴다는 것은, 신이 아들을 세상에 보낸다는 뜻이다. 주가 종에게 맡김(주는 버리고 종이 가짐)과 주가 종을 보냄(주는 아니 가고 종이 감)은 주종 공동소유와 주종 공동무소유를 합한 것을 뜻하는 말이다. 진리에서는 신과 아들이 세상을 소유하되 무소유하며 세상이 신과 아들을 소유하되 무소유한다. 비진리는 소유와 무소유가 분리된다.

     눅17:10의 종은 세상이며 6절의 너희는 '신 즉 주인'의 아들들이고 10절의 너희는 종 즉 세상이다. 사람은 육체 안에 영혼이 들어 있으므로 '세상 즉 종'의 일부인 동시에 주인의 아들이다. 6절의 너희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동료 (견습) 그리스도로서의 겉 제자(우리의 일반적인 사제관계와 동일한)이고, 10절의 너희는 그리스도의 속 제자이다 즉 마음 속 제자(심리작용에 대한 비유일 뿐인)이다.

     17:1, 2의 주체는 우리들이고 2절의 작은 자는 세상(3절의 형제(“우리들 즉 '아버지의 아들들'인 영혼들” 중의 하나)가 들어 있는 육체를 포함한)이다. 실족케 함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은 지옥의 영원존재성을 말한다. 지옥과 천당은 각각 영원히 존재한다. 그러나 지옥에 가는 자는 화가 있고 천당에 가는 자는 복이 있다. 이래서 우리는 전자를 버리고 후자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1, 2절을 모른다면 그이는 그 아들은 반대로 전자를 가지고 후자를 버린다. 화와 복과 지옥과 천당을 구분함이 복과 천당을 결과한다. 1, 2절과 3절의 관계는 이러하다. 형제가 내게 죄를 짓으면  내가 형제에게 보복하여 형제가 실족한다. 그러면 내가 “형제로 하여금 실족케 한 자”가 된다. 그 형제가 그 죄를 회개하면 내가 그 형제를 용서하고 보은하여 형제가 구덩이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형제로 하여금 실족치 않게 한 자”가 된다. 이는 천당으로서 (일곱 번에 일흔 번이라도 즉 영원무궁히. 사실 7은 창세기 천지창조의 날수로서 알파와 오메가 즉 무한을 뜻한다.) 서로 실족케 하여도 서로 용서하는 것이다. 이것과 6절과의 관계는 이러하다. 믿음은 실족하지 아니하게 함을 받음이고 불신은 실족하게 함을 받음이다. 뽕나무 기적은 진리에 대한 비유로서 믿음과 불신이 하나가 됨을 뜻한다. 진리는 이적에 비유된다. 진리는 불신이 신이기 때문에 불신하여도 信한다.

     7~10절은 종의 주인에 대한 대속을 뜻한다. 비유상, 진리에서는 주 그리스도가 종 세상을 위해 대속하고 종이 주인을 위해 대속한다. 비진리에서는 주 그리스도가 종 세상을 위해 대속하지 않고 종이 주인을 위해 대속하지 않는다. 대속이란 것은 부유한 사람이 가난하게 되는 대신에 그의 상대방 가난한 사람이 부유해지는 것을 뜻한다. 진리에서는 양자의 빈부가 일치하고 비진리에서는 양자의 빈부가 불일치한다.

 

 

종은 주인이 명한 대로 하였는데 주인은 종에게 명하지 아니한다(종은 주인에게 먹이는데 주는 종에게 먹이지 아니한다. 종은 주에게 시중들지 않는데 주는 종에게 시중든다. 단, 시중(굶음굶김)과 서비스(먹임먹음)가 하나인 것이 당연지사인 진리이고, 둘인 것이 不當然之事인 비진리이다.). 이는 주가 종에게 명하지 아니하여도 종인이 주인의 명을 행하는(주가 종에게 명하지 아니하여도 주가 종에게 명하는, 종이 주의 명을 행하지 아니하여도 종이 주의 명을 행하는, 종이 주의 명을 행하지 아니하여도 주가 종에게 명하는) 무위이화 즉 진리이다.

     무익한 종은 복음서에 두 번 나온다. 그 둘이 위의 두 인용절이다. 둘째의 무익한 종은 비진리의 살아도 죽는 그리스도이다. 첫째의 무익한 종은 진리의 죽어도 사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