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비판/금강경 해설

대승정종분· 묘행무주분 해설

통밀가루 2024. 10. 18. 15:23

    法會因由分 第一

 

    다음과 같이 제가 들었습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적에 큰 비구스님들 천이백오십 분도 함께 계셨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공양드실 때가 되어감에 따라 가사를 수하시고 바루를 들으시고 사위성으로 들어가시어 탁발하셨습니다. 그 성안에서 차례로 탁발하시고는 다시 본 처소로 돌아오셨습니다. 공양을 다 드시고 바루를 거두시고 가사를 벗으시었습니다. 그리고 발을 씻고 자리를 펴 앉으셨습니다.

 


 

    善現起請分 第二

 

    이때 장로인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른편 어깨쪽 가사를 벗고 바른편 무릎을 땅에 꿇으며 합장하고 공경스럽게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거룩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보살들을 잘 생각하여 보호해 주시며, 보살들에게 잘 부탁하여 맡기십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 즉, 착한 보살들이 있어 부처님 세계에 들으려는 마음을 내었다면 이들은 어떻게 생활하여야 하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리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 그래 그래 착하구나, 수보리야, 너의 말과 같이 여래는 보살들을 잘 생각하여 보호해 주시며 보살들에게 잘 부탁하여 맡기신단다. 자세히 들으라. 너의 묻는 말에 답해 주리라. 착한 보살들이 있어 부처님 세계에 들으려는 마음을 내었다면 다음과 같이 생활하며 다음과 같이 다스려야 하느니라.”

    “예,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고자 하옵니다.”

 


 

    大乘正宗分 第三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대보살들은 꼭 다음과 같이 마음을 다스려야 하느니라. '이 세상의 온갖 생명체들 이를테면 알에서 태어났거나 태에서 태어났거나 습기에서 태어났거나 갑자기 변화하여 태어났거나 하늘나라의 색계, 무색계에 태어났거나 무색계 하늘 중 유상천(有想天), 무상천, 비유상천, 비무상천에 태어났거나 모두 내가 저 영원한 부처님 세계에 들도록 인도하리라.'라고 서원 세우라.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생명체들을 부처님 세계로 인도하지만 실지로는 인도를 받은 중생이 없느니라.

    어떤 까닭이겠느냐? 수보리야, 만약에 보살이 자기가 제일이라는 모습 즉, 아상이 있다거나 나와 남을 나누어서 보는 모습 즉, 인상이 있다거나 재미있고 호감가는 것만을 본능적으로 취하는 모습 즉, 중생상이 있다거나 영원한 수명을 누려야지 하는 모습 즉, 수자상이 있다면 이는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妙行無住分 第四

 

    “또한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대상에 매이지 않고 보시를 하여야 하느니라. 이른바 형색, 소리, 냄새, 맛, 촉감, 기존관념을 떠나서 보시할지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꼭 이와 같이 보시하면서 자기가 보시를 한다는 생각도 내지 말을지니라. 왜냐하면 만약에 보살이 자기가 보시를 한다는 생각없이 보시를 하면 그 복덕이 헤아릴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쪽 허공의 크기를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남, 서, 북, 남서, 남동, 북서, 북동, 상, 하, 곧 이들의 허공의 크기를 가히 생각으로 헤아리겠느냐?”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자기가 한다는 생각없이 보시한 복덕도 이처럼 엄청나서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이처럼 가르쳐 준 대로만 마음을 내고 생활할지니라.”


 

   一切衆生之類인 저러한 생명체들을 부처님세계로 인도하지만(부처님세계에 인도를 받은 중생이 있지만) 인도를 받은 중생이 없다(중생을 부처님세계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불은 신의 아들임)에 물질이 있지만 신에 물질이 없다는 것이며, 진리이다. 비진리는, 부처가 중생을 부처님세계로 인도하지만 중생을 부처님세계로 인도한다.

     無住相布施는, 상에 머무르지 않고(상에 머무름이 없이, 상(色聲香味觸法을 포함한)을 떠나서) 보시함이다. 이는 신이 물질에 있지 않으면서 신이 물질에 있음이다. 이는 진리이다. 비진리는, 신이 물질에 있지 않으면서 신이 물질에 있지 않는다. 神(佛菩薩과 하나임. 佛은 侍主 즉 侍神 즉 侍天함.)이 물질(相)에 있으면(머무르면) 이는 신(主)이 물질(從)에 布施(施從)함이고, 물질(相)이 신(佛)에 있으면(머무르면) 이는 물질(從)이 신(主)에 布施(施主)함이다.

     보살이 상(허공 포함)에 보시를 한다는 생각없이 상에 보시를 한다는 것은, 불이 상에 있지 않는 동시에 불이 상에 있는 것이다. 이때에는 무한한 불이 무한한 상에 무한히 있게 되는데 그때에 상의 복덕이 무한하다. 상에 불이 합치됨이 (상의 무한한) 복이기 때문이다. 상이 보시를 한다는 생각없이 불에 보시를 한다는 것은, 상이 불에 있지 않는 동시에 상이 불에 있는 것이다. 이때에는 무한한 상이 무한한 불에 무한히 있게 되는데 그때에 불의 복덕이 무한하다. 불에 상이 합치됨이 (불의 무한한) 복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진리를 완전히 전개한 것이다. 더는 없다. 진리는 보살과 상 양자가 (영원히 괴롭기만 하여도 보살과 상 양자가) 영원히 즐겁기만 한 경지이다.

     佛과 相(一切衆生)이 상호, 머무르지 않으면서 보시하고, 보시하지 않으면서 보시하므로, 진리는 범상치 않고 기이하고 묘하고 기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