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비판/“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를 비판

불교의 돈오점수에 대한 내 생각

통밀가루 2024. 11. 7. 17:12

     頓悟漸修는 옳은 이야기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돈오는 법(이론)을 깨닫고 실지(실기)를 느끼는 것이고 점수는 그 법에 따라 실지를 매일 훈련하여 숙달하는 것이다. 점수는 기독교로 치면 聖化라고 할 수 있다. 도통은 꾸준히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 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불생불멸이다. 스님들이 불생불멸을 반야심경을 외는 주문으로만 외우지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점수도 할 수 없다. 처방을 모르면 꾸준한 치료를 진행할 수 없다. 점수는 수도이다. 이 수도는 격암유록에 말세의 대환란에서 나를 살리는 길이라고 나와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닦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법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리면 돈오를 너무 늦게 체험해버리면 환란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낮다. 일단 법이 갖추어져야 하고 그것에 따라 비뚤어진 마음을 꾸준히 바로잡아가야 하는 것이다. 방도 즉 도(고통을 벗어날 길. 이는 진리인데 진리를 도라고 하는 것은 신이 물질에 가는 길과 물질이 신에 가는 길이 온통 열려서 다시는 닫히지 않는 천당을 길에 비유함 때문이다. 이는 구약성경과 복음서에도 길로 많이 비유가 되어 있다. 도를 동양의 것으로만 알면 안 된다.)를 알고 그것을 닦아라. 이것이 수도이다.

 

천지개벽경 제5편 을사년공사기 중에서

 

 

격암유록 말운론 중에서. 삼인일석은 修이다. 살과 해는 살해로서 같은 뜻이다. 반복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