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비판

무주상보시의 뜻 / 발 씻음 비유의 뜻

통밀가루 2024. 7. 12. 12:44

     無住相布施는, 상에 머무름이 없이 보시한다는 뜻이다. 상은 萬事萬物(이것, 저것, 옳음, 그름, 선, 악, 해야 됨, 안 해야 됨, 해야 안 됨, 안 해야 안 됨, 日帝, 독립운동, 바이든, 푸틴, 공짜로 돈 받음, 공짜로 돈 줌, 거지의 밥을 나눠 먹음, 스스로 벌어 먹음, 부자의 밥을 나눠 먹음, 거지를 목탁으로 때려 살해하고 도망함, 거지가 중을 발로 참, 적에게 白燐彈을 쏨, 지뢰를 매설함, 김정은이 기쁨조에게 변태적 성행위를 함, 내가 보시했다, 내가 보시 안 했다, 내가 보시한 것을 기억한다, 내가 보시한 것을 기억 못 한다, 내가 보시하고 댓가를 받는다, 내가 보시하고 댓가를 안 받는다. 내가 보시한 것을 알린다, 내가 보시한 것을 안 알린다, 김정은의 변태행위를 인민들에게 알린다, 김정은의 변태행위를 인민들에게 감춘다, 자식 키우는 것을 거래처럼 한다, 자식 키우는 것을 기부행위나 선물증정처럼 본다,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답례를 해야 한다는 것은 그르다, 거래는 반드시 공정히 댓가를 지불해야 옳다 등등)이다. 보시의 주체는 부처('空 즉 神'의 아들. 실은, 부처는 신의 보시에 참여할 뿐임.)이다. 진리에서는, 一切衆生萬物도 부처에게 그렇게 하지만, 부처는 상에 머무름이 없이 상에 머무른다. 부처는 중생을 살림없이 중생을 살린다. 부처는 중생을 죽이면서 중생을 살린다. 진리는 生과 滅이 하나이다. 그래서 主와 不主가 하나이고 布施(베풀음)와 奪取(안 베풀음, 빼앗음)가 하나이다. 비진리는 생과 멸이 둘이다.

 


 

마음을 항복받는 법을 붓다에게 물었더니 [금강경] 법륜ㅣ감동ㅣ무주상보시

 

     부처가 일체중생의 고통을 없애되 없애지 말아라 있애라고 부처가 말하고 있다. 이러면 일체중생도 부처의 번뇌를 없애되 있앤다. 그러면 상호 번뇌를 있애도 없애는 해탈과 극락이 된다. 이것이 진리이다. 이 진리는 오직 하나이기 때문에 기독교에도 이것이 설해지고 있는데 불교인이나 기독교인이나 다들 이 진리를 모르고 있다.

     부처가 중생을 이해하면 부처가 중생에게서 이해를 받는다, 불이해하면 불이해를 받는다. 이 둘이 합친 것이 진리인데 진리에서는, 불이해하면 불이해를 받아도 이해하면 이해를 받는다. 둘이 안 합친 것이 비진리인데 비진리에서는, 이해하면 이해를 받아도 불이해하면 불이해를 받는다.

 

마태복음
20: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20: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20: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20: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0: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0: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0: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0: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13: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3: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3: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예수는 보살핌을 받으려 하지 않고 보살피려 하였다. 이는 예수는 비진리를 행하려 하지 않고 진리를 행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보시를 받으려 함이 아니라 무보시를 받으려 함이다. 즉 有住相布施(상에게 보시하면서 보시함. 상에게 보시하(고 상에게서 보시받아)(여)도 상에게 무보시하(고 상에게서 무보시받으)ㅁ.)를 하려 함이 아니라 無住相布施(상에게 보시 안 하면서 보시함. 상에게 보시 안 하(고 상에게서 보시 안 받아)(여)도 상에게 보시하(고 상에게서 보시 받으)ㅁ.)를 하려 함이다. 발씸어줌서비스란 것이 다른 쪽이 이쪽을 씻어주는 치욕과 이쪽이 다른 쪽에게서 씻음받는 영광이 하나일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번뇌가 이쪽의 해탈이다. 스포츠와 전쟁의 승부의 세계도 그렇다.

 

 

여기에 진리를 비유하는데, 단, 진리에서처럼 승과 부가 공존하면(相勝相負) 서로 승리(발씻어짐)의 기쁨만이 있고, 비진리에서처럼 승과 부가 분리되면 서로 패배(씻는 서비스를 함)의 슬픔만이 있다.

     영상에서 분별심 분별심 하는데 내가 분별심에 대해 논하겠다. 유보시와 무보시를 분별하는 것이 분별심이고 안 분별하는 것이 無分別심이다. 김정은이 정신 차린다 김정은이 현재처럼 악정을 한다라는 두 중생(두 相)이 있다 하자. 전자는 좋고 후자는 나쁘다. 이 좋고 나쁨 역시 중생이다. 그런데 이 모든 중생에는 부처에 대한 유보시와 무보시가 있다. 부처 또한 저 중생들에게 대한 유보시와 무보시가 있다. 이렇게 상호 유무보시를 통하면 상호 무보시하여도 유보시하나, 불통하면 상호 유보시하여도 무보시한다. 즉, 유무보시를 분별하면 김정은의 상태가 좋든 나쁘든 다 무보시하고, 유무보시를 무부분별하면 김정은의 상태가 좋든 나쁘든 다 유보시한다. 전자는 虛妄不眞으로서 김정은의 선정이 나쁘다 하고 김정은의 악정이 좋다 하는 것이고, 후자는 眞實不虛로서 김정은의 선정이 좋다 하고 김정은의 악정이 나쁘다 하는 것이다. 우리가 김정은의 악행과 김정은의 선행을 차별하면 즉 偏愛偏惡하여 무차별적으로 미워하면 김정은의 악행을 좋아하고 선행을 미워하게 되나, 우리가 김정은의 악행과 김정은의 선행을(김정은선악의 선악과 부처의 해당 부분의 선악을) 무차별하면 즉 不偏愛不偏惡하여 (김정은선악을) 무차별적으로 사랑하면 김정은의 악행을 싫어하고 선행을 좋아하게 된다. 분별심이 없으면 분별심이 생기어서 성인이 되고(이상 진리), 분별심이 있으면 분별심이 없는 미치광이가 되는 것이다(이상 비진리). 고로, 서양의 人種差別主義者는 백인을 사랑하고 흑인과 황인을 미워함으로써(차별. 차별적 애정(백사랑 (흑황사랑))과 차별적 증오((백증오) 흑황증오).) 백과 흑황 둘 다 미워하므로(무차별적 증오. 묻지마 증오.) 백인이 미개하다 흑인과 황인이 우수하다 하는(無分別 沒知覺 상태) 미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는 내 마음이 미친 마음에게서 항복받는 상태가 아니다. 온전한 마음이 미친 마음에게 항복한 상태이지.

     할매가 무주상보시를 한다면 자식과의 어떤 댓가 관계에서 최적의 것을 선택하게 된다. 분별심이 있는 이성적인 할매가 되는 것이다. 김정은의 악행은 다 그이의 무분별심 비이성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다음 한 구절만 실천해도 천당에 간다. 그것 자체가 극(至極: 大, 大低, 都大體, 夫, 普, 洪, 博, 영원무한무궁, 알파와 오메가, ALL, , 일체, 빠짐없이, 남김없이, 전부, 온전히, 일제히)락이다. 해탈이고 무번뇌이다. 마음에 이는 극(매우, 많이, 크게, 심히)악하다 이는 악하다 이는 중성이다 이는 선하다 이는 극선하다 하는 분별심이 있다면 그 자체가 극락이고 또 선이든 극선이든 중성이든 필요한 것으로 자신의 의지가 서게 되고 우주의 기운이 쏠리게 된다. 선한 것은 선하다 하고 악한 것은 악하다 하는 것이 선이다. 선한 것은 악하다 하고 악한 것은 선하다 하는 것이 악이다.

 

마태복음
5: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5: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5: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태복음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10: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식구와 남과 '내게 의식을 베풂'과 '아니 베풂'과 나를 살해함과 아니 살해함과 “내가 잘했는데 상대가 내게 잘함”과 “내가 잘못했는데 상대가 내게 잘못함”과 “내가 상대에게 잘했는데 상대가 내게 잘못함”과 “내가 잘못했는데 상대가 내게 잘함”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그것들에 대한 유보시와 “무보시(목숨을 잃게 함, 십자가를 지움, 불을 던짐, 원수가 됨, 미움을 받음: 37절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남인 제자들에게 무보시당하듯이 자기 식구들에게 무보시당하는 것처럼 제자가 남인 예수에게 무보시당하듯이 제자의 식구들에게 무보시당할 것을 교육함.)”를 무차별하면 이는 내 아들이다 이는 남이다 내 아들이 귀하다 남인 예수는 천하다 이 경우에 베푸는 것은 좋다 아니 베푸는 것은 나쁘다 살해함은 나쁘다 등등의 판단이 서게 되는데 이가 소위 천당이요 극락이요 할매가 성인군자됨이요 도통이다. 기독교와 불교와 유교와 증산도 대순진리회 태극도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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