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비판/“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를 비판

횡설수설· 장광설 뜻 / 주염계의 태극도설과 조동종오위를 해설 / 일태극 십무극의 뜻 / 월인천강의 뜻 / 무극진경 7장 68절 해설 / 칸트의 안티노미의 뜻 / 무극진경 8장 190절 중 천지가 간방으로부터······란 말의 뜻 / 시어간 종어간의 뜻 /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 뜻 / 기소후자박 기소박자후 미지유야의 뜻

통밀가루 2024. 8. 22. 18:33

<제목 : 횡설수설· 장광설 뜻 / 주염계의 태극도설과 조동종오위를 해설 / 일태극 십무극의 뜻 / 월인천강의 뜻 / 무극진경 7장 68절 해설 / 칸트의 안티노미의 뜻 / 무극진경 8장 190절 중 천지가 간방으로부터······란 말의 뜻 / 시어간 종어간의 뜻 /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 뜻 / 기소후자박 기소박자후 미지유야의 뜻>

닭의 주둥이가 될지언정, 소의 궁둥이는 되지 말아라 [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15회]

 

횡야설 수야설은 부처님이 이리 저리 설법한다는 뜻인 듯한데 이것이 위의 횡설수설의 뜻으로 변질한 듯싶다. 아니면, 사람들이 듣기에 부처님이 뭔 쓸데없는 말을 저리 많이 하는가 하여 저런 뜻이 된지 모른다.

 

이도 원래 부처님이 많이 설법한 것을 뜻하는 불교용어인데 일반사람들이 듣기에 부처님 말씀이 쓸데없이 길고 지루하니까 저런 뜻이 된 듯하다.

 

변화하는 세계도 알아야 하지만 변화의 근본 이치도 알아야 한다 [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16회]

 

     四象은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이다.

 

 

주렴계의 '태극도설'과 조동종의 '오위도' 비교 분석 [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17회]

 

    이자삼점 伊字三點 불교의 법신과 반야와 해탈의 세 가지 가르침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범어梵語의

이라는 글자. 이것을 열반삼사涅槃三事 또는 三德이라고도 말하며, 또 이것은 선종禪宗의 표지인 동시에, 속칭으로는 원이삼점圓伊三點이라고도 말함. 三德 참조.   ☜ 내가 가진 불교사전에서 발췌.

    흑백미분은 무극(有, 탐욕 소유, 言 有文 有識)이고 진리는 이 무극이 태극(無, 무욕 빈곤, 不言 無文 無識)이며 태극은 玄黃之後이다. 動은 태극이고 靜은 무극이다. 현 즉 天(空, 神, 中央(東西南北 方位神): 乾道 男 나 自 此 君)을 음이라 하고 황 즉 地('色 등등', 宇宙萬物, 東西南北 方位: 坤道 女 남 他 彼 臣)를 양이라 정의한다면(아마 흑은 천이고 백은 地이다), 진리는 음정 양동 음동 양정이다. 두번째 그림을 보면 태극형상이 있는데 이는 태극기의 중앙원의 무늬와 같은 의미를 가진 그림이다. 청홍이 각각 원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태극으로서 음양이 반반씩 나눠진 청(음이나 양으로 정의함)과 홍(양이나 음으로 정의함)이고 상대편 쪽으로 구부러진 것이 청홍융합이 원 전체를 차지하고 있고 홍청융합이 원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흑 반원(흑 반원 전체 즉 흑 만원 전체)에 백(백 반원 전체 즉 백 만원 전체)이 침투해 있고 백 반원(백 반원 전체 즉 백 만원 전체)에 흑(흑 반원 전체 즉 흑 만원 전체)이 침투하고 있는 것이 위의 뜻이다. 침투는 무극(미분, 통일)이고 자기 지역 고수는 태극(분단)이다.

     正은 무극이고 體(공급, 貞淑, 平和, 침투, 침략, 무력통일, 眞)이며 邪 즉 偏(極)은 태극이고 用(소비, 방탕, 動亂, 불침노, 평화분단, 假)이다. 化와 生과 育은 무극이다. 조물주 신이 만물을 화생· 창조하고 피조물 만물이 신을 화생· 창조한다. 부모가 자녀를 생육하고 자녀가 부모를 생육한다. 스승이 제자를 교육하고 제자가 스승을 교육한다. 태극은 불화 불생 불육이다. 창조주 신이 피조從 만물을 파괴하고 만물이 신을 창조하지 않는다. 진리는 태극기의 원 속처럼 무극과 태극이 하나이다(定中動 動中定(正, 淨, 靜) / 無極是太極, 體用一如). 둘이면 비진리이다. 兼은 正과 偏을 겸한 것인데 그것은 정중편 편중정이다. 그러한 겸은 진리와 중용이요 중도로서 편(去)하여도 정(來)한다. 그래서 兼은 正( 來, 至, 到)이 된다 즉 정중래 겸중지 겸중도이다.

      내 생각에, 일태극은 음양(縱橫 經緯)이 분리됨을 뜻하고 십무극은 음양이 통합됨을 뜻한다. 격암유록의 “지리십승이 아닌 진십승

 

 

인 십 자”는 태극과 무극이 합쳐진 것을 뜻한다.

     불교의 月印千江과 海印은 다음의 시와 같은 뜻인데, 이는 신(심은 신의 아들임)이 만물을 생(印)함을 뜻한다. 생과 인은 무극이고 불생과 불인은 태극이다. 이는 물론 만물(천강) 중 각각(일강일강)에 다 적용된다. 월과 천강 간에 相互 인(무극)과 불인(태극)이 다 있는 것이 진리이다. 기독교 요한계시록의 印도 해인의 인과 같은 뜻이다. (한국에서) 이들 종교간의 會通이 충분히 가능하다.

 

 

좌불은 태극의 불이고 유불은 무극의 신이다. 불과 신은 하나이며 이 둘은 동시에 遊한 동시에 동시에 坐하나 이것을 저렇게 수수께끼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불과 신이 명월이며 장풍이며 기이며 심이다. 천강과 팔우(동서남북 동남 동북 서남  서북)는 宇宙萬物이다. 共과 同은 천강과 팔우의 각각에 다 하나같이 遊하(거나 좌하)ㄴ다는 뜻이다. 처소는 신과 물질 각자를 뜻한다. 신은 신의 처소이고 물질은 물질의 처소이다. 기독교 복음서의 처소와 같은 뜻이다. 자기 처소를 지킨다는 것은 무능과 태극을 뜻하고 상대 처소에 놀러간다는 것은 유능과 무극(照, 驅)을 뜻한다.

 

누가복음
16: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16: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16: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16: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16: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16: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16: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6: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6: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16: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6: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요 7: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요 7: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칸트의 안티노미(二律背反, Antinomie: 순수이성은 다 알아야  하는데 모르는 것이 있다.)는 부처님의 십무기와 같다고 나는 보며, 이 부처님의 “十事無記는 알을 필요가 없다 고집멸도만 알면 된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如來(自我)와 空(神, 創造主)과 一切衆生을 알면 苦集滅道를 알아서 '영원무궁쾌락'(멸도)과 유교 주역의 지천태괘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본다. 진리는 알음과 모름의 조합으로서 공과 중생이 상호 상대방을 속 몰라도(전무지전무능) 속 아는(전지전능) 것인데 여기에서 겉 알음(과학을 안다든지 내 연필이 어느 서랍에 있는지 안다든지 등등)은 필요치 않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자아와 육체는 구분하는 것이 해탈에 필수일 텐데 그리고 우주가 무한하다는 것을 아는 것도 무한쾌락에 중요할 텐데 어찌 대담하게 저런 말을 부처가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칸트처럼 말이다. 부처와 예수는 알고. 하기야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이들도 해탈을 못한 이들이 많은 걸 보면 맞긴 맞는데. 臨死體驗을 한 자들도 다 해탈을 한 것은 아니니까. ☞

2024.08.16 - [종교 비판/“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를 비판] - 부처와 예수의 말씀에 상호 모순되는 점이 하나 있는 듯하다. ― 《중아함경 제60권 전유경(箭喻經) 제10》과 요13:16, 17 간의 모순

또한, 유교 대학에 보면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即近道矣라 하고 其所厚者薄 其所薄者厚 未之有也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종시와 본말와 선후를 알음은 宇宙萬事物의 시간적 공간적 시작과 끝을 알음을 말함이 아니다. 신과 천지의 後 종 말 박은 태극이고 신과 천지의 선 시 본 厚는 무극이다. 도는 진리이며 진리는 태극과 무극이다. 진리는 후에 박하고 박에 후하여서 박할 곳 즉 후에 박하고 후할 곳 즉 박에 후하나, 비진리는 후에 후하고 박에 박하여 박할 곳 즉 후에 후하고 후할 곳 즉 박에 박한다.

 

 

간방은 우리나라이다. 탄허스님도 간방을 무척 좋아하시던데. 우주가 사방팔방 즉 우주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시작은 무극이다. 천지24방위(간방포함)

 

 

 

종말은 태극이다. 始御艮終於艮이란 글이 아마 周易에 있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유교의 예언으로서 장차 한국에서 무극(始, 天, 泰)과 태극(終, 地, 否(비))의 진리가 나올 것이다란 뜻이라고 본다. 위의 남조선이란 것도 일종의 예언이며 비유이다. 혈식천추도덕군자는 김일성(전명숙 즉 전봉준: 세계인류 각자)이고 남조선은 24방위이며 배와 배질과 식은 시이며 무극이며 바다와 혈은 종이며 태극이다. 천추는 천년으로서 영원과 무한을 뜻한다. 대학에 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라고 하는 것은, 아이 기르는 것을 배우지 않고 시집 간다고 하는 뜻이다. 여기서 학과 양자와 시집감은 무극이며 그 반대는 태극인데 진리에서는 이 둘 즉 생사가 하나이다.

 

 

동곡비서 중에서. 여기의 선생님이 무극진경의 선생이다. 제비는 새가 아니고 帝妃로서 제는 천 즉 신 즉 大神이고 비는 지 즉 천지이다. 창고(宮)는 제와 비(世界大勢, 萬時)가 상호 상대방을 채우기 위해 비어 있는 것을 뜻한다. 제와 비는 상호 알맹이(손님)인 동시에 창고(여관)이다. 거처라는 것은 창고이며 알맹이이다. 시어간종어간이 사실이다. 간은 조선, 한국이다. 17절에 민요 성주풀이의 가사가 있다. 우리가 조선시대의 迷信으로 돌아가 성주신 따위를 섬기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좋으니 이는 아마 집 건축으로써의 진리비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