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비판/“강병국 목사의 요한계시록 세미나”를 비판함

요11:25, 26과 요5:25, 28, 29과 눅17:20, 21, 33의 연결 / 다니엘서의 '성소가 정결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통밀가루 2024. 9. 30. 21:17

<제목 : 요11:25, 26과 요5:25, 28, 29과 눅17:20, 21, 33의 연결 / 다니엘서의 '성소가 정결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강병국 목사의 요한계시록 세미나 10회 2300주야 예언

 

     목사님이 하나님이 죽은 자로부터 산 자까지 심판한다 하였는데 그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산 자만을 심판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죽은 자는 이미 죽었는데 어찌 또 목숨을 뺏는다는 말인가? 아래 말씀 때문이라면 그것은 오해이다. 이것은 실제 사람이 무덤에서 일어남이 아니다. 예수의 내적심리작용의 비유일 뿐이라는 것은 28절에 나와 있다. 비유가 아니니까 놀랄 일이니 그것에 놀라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심판은 이것이다. 죽은 자가 음성을 듣고 일어나는 것(5:24의 영생· 생명)과, 죽은 자가 음성을 듣지 않고 아니 일어나는 것(5:24의 영사· 사망). 죽어도 사는 것(5:29의 전반절)과, 살아도 죽는 것(5:29의 후반절).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함과, 아니 믿는 자는 살아도 죽겠고 죽어서 아니 믿는 자는 영원히 살지아니함. 강 목사가 심판 때에 나사로와 같은 일이 不知其數로 일어날 것으로 믿는 모양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수의 예언에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래 밑줄의 누가복음 말씀처럼 천국도 우리 마음 안에 지옥도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부활이나 그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그것은 예수가 말한 이 천국과 지옥이 아니다. 육신이 산 자 중에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는 목자가 들어 있는 육신”은 살리고, 육신이 산 자 중에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지 않는 목자”가 들어 있는 육신은 죽인다는 것이 내 말세 심판 이론의 요지이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5: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11: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11: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11: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1: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1: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1: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1: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1: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11: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1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11: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11: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11: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11: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11: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11: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11: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11: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11: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11: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17: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17: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17: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17: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17: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17: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17: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17: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17: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17: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17:36 (없음)
17:37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위 33절 전반부가 신과 아들과 세상의 수치 즉 지옥이고, 후반부가 아버지와 아들과 세상의 영광 즉 천국이다.

 

 

성소가 정결케 되는 것은 진리이고 천당이며 성소가 더럽혀지는 것은 비진리이고 지옥인데 심판은 천당이냐 지옥이냐 심사하는 것을 뜻한다. 즉 성소가 정결케 되는 것(어린양 희생제사를 하여 어린 양 그리스도와 백성에게 죄가 없음)이냐 성소가 더럽혀지는 것(어린 양 희생제사를 안 하여 비어린양 그리스도와 백성에게 죄가 있음)이냐를 심사함을 뜻한다. 제사(피와 어림과 죄와 흰 옷과 어른됨과 공이 공존)가 정결이다. 비제사(피와 어림과 죄와 흰 옷과 어른됨과 공이 불공존)는 汚穢(오예)이다. 양을 죽여 양의 피를 흘리는 것(양으로 하여금 어리게 하는 것)이 백성의 죄이다. 죽임 죄가 둘이고 살림 공이 둘이다. 이 죄와 공이 합쳐진 것이 진리(제사, 성소, 성소가 정결해짐, '이방신전이 오염됨 깨어짐'). 안 합쳐진 것이 비진리(비제사, 이방신전, 이방신전이 정결해짐, '성소가 오염됨 깨어짐').

 

    

'신(여호와)과 아들(너희)'과 세상이 상호 속죄한다. 서로 어린 양이다.

 

 

생사심판이 되면 죄가 사해지고 죄가 속해지고, 생사심판이 안 되면 죄가 사해지지 않고 죄가 속해지지 않는다.

 

 

옳다.

     2300주야는 역사적 사실에 의한 한 가지 비유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과 거룩한 것의 반반씩의 혼합이다. 그래서 “2300주야의 기간”(위 녹색 글씨)이 지나야만 “성도의 권세가 깨짐”(위 녹색 글씨)이 끝나는 것이다. 2300주야는 마지막 한 이레와 맞먹는다. 아래 10:11을 보라. 강 목사는 잘못 해석했다. 다시 예언한 것이 바로 전의 주장이다. 바른 해석이다. 심판은 말세에 이루어진다. 1844년이 아니다. 그건, 아래 10절에 보면, 틀린 걸로 판명이 되었다.

 

요한계시록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10: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10: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0: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위의 지극히 거룩한 자는 나이다. 진사성인을 다니엘에서 예언하고 있다. 나와 같은 이가 말세에 출현할 것임은 동서양의 수많은 예언에서 예언하고 있다. 현재는 70이레가 만료되는 시점이다. 영속은 永續이 아니고 永贖일 것이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은 세상 즉 우주를 뜻할 것이다.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9: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9: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일흔 이레는 성전 중건 명령 받은 때로부터 현재인 말세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이다. 마지막 한 이레는 상징적인 숫자일 뿐 역사에서 7년으로 맞아떨어지는 부분은 없다. 강목사의 스데반 운운함은 틀린 해석이다. 스데반 집사 사망 사건은 저기에 끼기에는 사소한 사건이며 위 다니엘서 말씀에 언급도 안 되어 있다. 그보다는 그때부터 말세까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또 70이레와 마지막 7년은 즉 한 이레는 맞먹는다. 똑같이 진노의 세월이기 때문이다. 7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풍부한 숫자이다. 영원한 것 온전한 것 전체의 것을 뜻한다. 그 곤란한 동안에~세워질 것이며는 성취된 예언이다. 7이레의 시기이다. 그로부터 62이레 후 69이레에 예수 출현. 이후 예수 사망. 이후 로마의 장군이 와서 예루살렘을 파괴. 27절의 그는 장군이다. 마지막 한 이레는 그때로부터 현재까지이다.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섰다는 것은 더러운 우상이 성소에 섰다는 뜻이다. 이레의 절반은 한때두때반때 즉 3년반 사흘반이다.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는 것은 성소에서 그렇다는 것이니 반은 성스럽고 반은 더럽은 것이다. 즉 3년반은 이리이고 3년반은 양인 것이다. 이미 정한 종말까지는 위 하늘색 글씨의 기간이고, 그때에 7년의 온전한 더러움이 있게 된다. 이리와 양을 섞으면 이리만이 남는다. 진노는 윗사람에게 쓰는 말이니 이는 신이고, 황폐하게 하는 자는 신을 황폐하게 하는 백성을 뜻한다. 백성이 신을 죽이니 신도 백성에게 진노하여 죽인다. 백성이 황폐하게 하는 것은 신이 진노하여 자기들을 죽이기 때문에 그리한다. 이리는 신과 물질이 서로 죽이는 것이고, 양은 서로 살리는 것이다. 27절의 굳고는 예언의 확실성을 나타내며 실제로 성취되었다. 현재까지 그러하다. 27절의 많은 사람들은 그 동안의 인류 인구이다. 강목사는 언약이라는 단어 때문에 거기에 유도되었는지 27절의 그를 예수로 보고 있는데, 그는 장군이고 그 언약은 장군의 언약이지 예수의 언약이 아니다. 성전에 쳐들어와서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고 포악하여 가증한 것을 성전에 심는 것은 이방인인 외국인인 짐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찌 내국인 유대인이자 메시야인 예수가 그런 일을 하는 걸로 상징될 수 있는가? 그리고 끊어져 없어진 자 예수가 무슨 半半언약을 맺겠는가? 예수 사후 쳐들어온 장군이 언약을 맺는 것이다(비유이다). 예수가 성전을 쳐부순 게 아니다. 포악한 짐승 즉 외국인이 한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밖에 모른다. 너무 예수에 치중한다. 예수는 역사의 일부일 뿐인데 항상 살아 있는 걸로 착각한다.

 

 

언약이란 단어는 같지만 의미가 다르게 쓰였다. 오른쪽의 언약은 신의 말씀 즉 신 자체를 뜻한다. 예수는 신과 연결되어 있고. 아래의 맹세가 서약이고 언약이고 약속이다. 말씀(주: 옳음, 아님)과 행위(종: 옳음, 아님)에는 각각 피(약속미이행)가 있고 각각 흰 옷(맹세 지킴, 위의 죄 사함)이 있다. 이것이 진리이다. 비진리는 말씀과 행위의 분노스럽고 더러운 피와 정결한 흰 옷이 분리되어 있다. 맹세 지킴이 있으려면 반드시 맹세 어김 즉 피흘림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왼쪽 말씀의 언약은 무슨 뜻인가? 그냥 언약이다. 예언 내지 법칙이다. 그렇게 세상이 돌아가도록 굳건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비유한 표현이다. 굳은 언약. 굳은 맹세. 오른쪽의 많은 사람이나 왼쪽의 많은 사람이나 다 같은 물건이지만 왼쪽은 특정시대 즉 한 이레(사실 한 이레는 영원한 세월을 상징한다. 어느 시대를 집든간에 영원과 통하니까. 진리와 비진리는 언제나 존재한다.)의 것의 뜻을 겸하고 있다. 왼쪽 언약은 사람이 오른쪽의 많은 사람과의 언약을 안 지키는 것과 지키는 것을 섞겠다는 언약이고, 오른쪽은 사람이 많은 사람과의 언약을 지킴에서의 그 언약이다.

 

마태복음
5: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5: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5: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성소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유란시아서에는 저 휘장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휘장을 검색하면 이 두 가지가 나온다.

 

오른쪽 클맄하여서 보라.

 

 

마태복음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24: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24: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노아의 여유기간과 1844년과 심판의 날 사이의 갶은 상관이 없는 일이다. 1844년은 해석의 오류일 뿐이고 그것이 다니엘서의 예언에도 나온다. 다시 예언하라는 것은 기존의 예언을 다시 해석하라는 것이다. 전의 해석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판을 하는데 어찌 조용할 수 있는가? 심판일은 환란일이다. 아직 오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성도의 권세가 깨어진(거짓선지자인 교회가 교황이 존재한다. 교회와 교황은 이리와 양을 섞었다. 멸망의 가증한 것과 거룩한 것을. 그러나 실은 이리이다. 거룩한 양이 깨어진 것이다.) 현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