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비판/“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를 비판

중도(中道)의 뜻 / 제법공상의 뜻 / 반야심경의 역무득 이무소득고의 뜻 / 고집멸도 사성제 팔정도 해설 / 무소유 뜻

통밀가루 2024. 8. 10. 02:56

<제목 : 중도(中道)의 뜻 / 제법공상의 뜻 / 반야심경의 역무득 이무소득고의 뜻 / 고집멸도 사성제 팔정도 해설 / 무소유 뜻>

 

팔만대장경, 화엄경, 금강경을 거친 요약본이 바로 반야심경 | 중도란 무엇인가? [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10회]

 

     무아의 아는 공 즉 신과 연결된 존재이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래서 무아일 때에는 반드시 무공이다. 고로 반야심경의 색중무공은 색중무아이다. 스님께서 현재 아상과 무아의 我들을 동일한 존재로 착각하고 계시다. 반야바라밀다는 공이 아니라 진리((오온개불공하지도 않고 五蘊皆空하지도 않으며, 오온개불공하여도) 오온개공한 것.)이다. 오온개공은 색수상행식즉시공(색수상행식불이공)이란 뜻이다. 공즉시색수상행식은 공개오온(공불이색수상행식)이다. 即과 不異는 같은 뜻이다. 오온과 공은 별개의 두 물건인데 이들이 서로 즉하고 서로 다르지 않다는 두 표현은 같은 표현이다. 諸法空相은 “제법시공 즉 제상시공 相(이 상은 물질 즉 우주를 뜻함)시공”의 相(이 상은 별 의미없음. 그냥 모양.)이다. 49년을 설법했는데(참) 49년을 설법 안 한 것(거짓)이, “상(49년 설법)에 공(49년 설법)이 있음<공에 상이 있음>”에 “상에 공이 없음<공에 상이 없음>”이 있음이다.

     제법공상은 불생불멸이라 하고 시고 공중무색이라 하였는데 생은 색중유공(제법공상) 공중유색이고 멸은 색중무공 공중무색이며, 진리는 생즉멸 멸즉생이므로 불생불멸이므로 멸하여도 생한다. 그래서 색중무공 공중무색하여도 색중유공 공중유색한다. 멀쩡히 코와 눈이 다 있는데 공(하나님) 가운데 그것들이 다 없다는 것이 신기하지만 사실이다. 최신물리학 같은 데서 이를 논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공중무색이란 것은 공 중에 소리와 소리 없음과 모습과 모습 없음이 다 없다는 뜻이다. 냄새 유무 방사능 유무 광선 유무도 마찬가지이다. 관세음의 관은 창조를 뜻하고 음은 소리인데 관세음은 소리를 창조한다(소리 등의 물질을 수납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듣는 것(대상) 보는 것 냄새 맡는 것 등등을 다 보는(달리 표현해도 무방) 셈이다. 아마, 성어악은 비유일 뿐이다. 樂은 진리를 뜻한다. 관세음(말씀, 뜻, 명령)의 소리를 비유로 본다면 이는 보살이 세상(행위) 전체를 영접함 수납함 용서함이다. 이때에 보살과 세상은 서로 상대의 소리를 듣는다.

     역무득과 이무소득의 득은 뜻이 서로 다르다. 역무득은 공 가운데에 얻음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 말씀과 뜻 가운데에 내가 아들을 얻는다든지 여자친구를 얻는다든지 만 원을 얻는다든지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다든지 그림을 사서 그림을 집벽에 걸음으로 그림을 얻는다든지 함이 없음이다. 역무득도 있지만 역무실도 있다. 역무실은 내가 그림을 잃어버림도 없음이다. 또 역무부득도 있다. 내가 그림을 얻지 않음도 없음이다. 또 역무불실도 있다. 내가 그림을 잃지 않음도 없음이다. 그러나, 이무소득은 공이 18계나 12연기나 사성제나 득 등을 득하는 바가 없다 즉 공에 18계나 12연기나 사성제나 득이 무하다는 뜻이다.

     아니면, 역무득과 이무소득고의 득은 뜻이 같다. 단순히 역무득 앞의 내용이 너무 기니까 역무득고라 하지 않고 역무득 한 뒤에 이무소득고로 표현했을 뿐이다.

     보살(부처)은 중생을 무소득(무소유)한 고로 유소득(유소유, 소유)한다. 즉 공실색 득(즉, 시) 공득색이므로 공실색하여도 공득색한다. 이는 피안의 경우이다. 심무가애하다. 도일체고액한다. 차안은 보살은 중생을 유소득(유소유, 소유)한 고로 무소득(무소유)한다. 즉 공실색 실 공득색이므로 공득색하여도 공실색한다. 심유가애하다. 도일체쾌락한다.

     공에 12연기(12연기는 아마 고집멸도 사성제의 고집이다 차안이다.)가 없는 것을 스님이 번뇌가 끊어지는 것으로 착각하시는데 사실은 다르다. 공에 12연기가 없으면 그것이 보살의 공포이요 고액이요 번뇌이다. 보살은 이러한 공포과 얽매임 가운데 쾌락을 두므로 해탈을 얻는다. 이것이 중도(중간을 택하는 방법 길)이다. 공포가 즐거움이고 즐거움이 공포이므로 공포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고 중간이다. 헛되어도 참되다. 이 중도에는 고액이 조금도 없다. 진실불허하다. 그러나 비중도(중간을 택하는 방법 길이 아님)는 공포가 공포이고 즐거움이 즐거움이므로 공포이고 즐거움이다. 양극단이다. 참되어도 헛되다. 이 비중도에는 즐거움이 조금도 없다. 허불진실하다.

     공에는 12연기(고집)와 逆(盡)12연기(멸도)가 없다.

     고집멸도 사성제 중 도성제는 팔정도(정견 정사유 등 8가지)인데 이는 진실(오온개공 공중유색수상행식)을 뜻한다. 고성제(포기성제)는 집성제에 의해 생긴다. 그렇다면 고가 멸하는 멸성제는 도성제에 의해 생긴다. 이 락성제(멸성제)는 불집성제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불집이 뭔가? 불생이다. 불생불멸(불집착불포기)에 의해 쾌락(팔정도)한다는 것이다. 고통은 뭔가? 팔불정도이다. 부정견 부정사유 등이다. 민주당이나 국힘당의 개개 의원이 뭔가를 잘못 보고 잘못된 정책을 지지할 경우가 그 사람의 지옥이다. 집착은 뭔가? 정견 등이다. 포기는 뭔가? 부정견 등이다. 이래서 우리는 옳은 것을 옳다 그른 것을 그르다 하지도 않아야 하고 옳은 것을 옳지 않다 그른 것을 그르지 않다 하지도 않아야 하며, 내 코가 있다면 내 코가 있다 하지도 않고 내 코가 없다 하지도 않아야 한다. 이것이 한국이라면 이것을 한국이라 하지도 않아야 하고 미국이라 하지도 않아야 한다.

     공에 12연기가 없는 고로 12연기를 끊는다고 하시는데 이는 무식한 소리이시다. 보살이 공에 12연기를 없애면 이는 보살의 고난이고 있애면 이는 쾌락이다. 보살이 공에 12연기를 없애는 동시에 있애는 것이 보살이 역12연기를 행함이요 멸성제 도성제를 행함이다. 이는 그 자신의 역12연기이고 앞서 쓴 12연기는 자신의 12연기를 일체중생의 일부로 보거나 다른 이의 12연기를 일체중생의 일부로 볼 때의 그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나 남이 하는 일상생활의 보살질이나 역보살질도 세상(일체중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스님께서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 무지역무득의 무득에 대해서 잘못 알고 계시는데 내가 가르쳐 드린다. 보살이 을 무소유하여 그것이 하면 득(일반적 지혜나 종교적 지혜나 반야 등을 얻음도 포함. 병을 얻는다든지 가애와 공포를 얻음도 포함?)을 유소유하여 그것이 공에 유한다. 이것이 無上正等正覺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처음의 득은 보살이 이것을 의지하여 無上正覺을 얻는다 이것을 행하여 무상정각한다 무상정각을 얻는다는 뜻이고 위의 핑크색 밑줄 친 부분이다. 둘째의 (무와) 득은 위의 이탤맄체 밑줄 친 부분이다.

     (삼세)보살과 삼세제불이 다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즉 그것을 행하여 원리전도몽상과 열반과 무상정각을 얻었다고 했는데 반야바라밀다와 무상정각 등은 다 진리로서 동의어이다.

     얼마나 세계의 불교가 착란하며 헤매고 있는지 여러분이 내 글과 스님의 해설을 비교해 보면 잘 알을 수 있을 것이다.

     스님께서 중도를 설하시면서 무상정득정각과 (무상정각 내의) 공중무색을 연결지어 중도라 하시는데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전자는 공중무색공중유색이 합하여(중도하여) 공중유색함이고 후자는 전자 안의 공중무색인데, 이 둘이 합하여 중도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眞空妙有는 불교의 잘못된 교리를 표현한 용어일 것이다. 이 무슨 황당한 이론인가 하면서 듣고 있는데 그것을 맺으면서 저 단어가 스님에 의해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이건 저 스님의 개인 의견이 아니고 불교의 정식교리였구나 나는 한 개인의 망상 정도로 생각했는데 불교계의 정식교리라니 놀랍다. 저 부분에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분석하려면 나의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겠다. 격암유록의 하산시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혹 스님의 저 진공묘유 설명이 맞는데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불교의 중도론과 진공묘유는 不法이요 假法이요 엉터리 이론들이다.

 

문장 하니 얼마 전 라디오에 출연한 김홍신씨가 생각난다. 그의 수도 어쩌고 하는 아나운서 소개멘트를 듣고 기대를 좀 했는데 역시나 석가모니가 버린 그 고행수도류의 수도였다. 몸만 망치는. 글 쓰면서 뭘 어떻게 했던 모양이다. 물을 안 먹고 글을 썼다나 어쨌다나? 피흉취길避凶就吉. 피흉추길避凶趨吉. 推는 타이핑 오타일 수도 있고 원문에 뜻을 숨기려고 일부러 다른 글자를 썼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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