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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진경 8장 77절 해설

태극도 - 무극진경 8장77신경원이 급히 사람을 보내어 아뢰기를 "경관이 날마다 찾아와서 선생님의 거취를 조사하나이다." 하니, 상제님께서 심부름 온 사람에게 글을 써 주시며 "이 글을 경원에게 전하되, 한 번 읽고 곧 불사르게 하라." 하시니라. 경원이 그대로 하매 그 후로는 경관의 조사가 그쳤으며 그 글은 이러하니라.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方之怨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천용우로지박즉 필유만방지원 지용수토지박즉 필유만물지원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인용덕화지박즉 필유만사지원 천용지용인용 통재어심心也者 鬼神之樞機也 門戶也 道路也 開閉樞機 出入門戶 往來道路심야자 귀신지추기야 문호야 도로야 개폐추기 출입문호 왕래도로神 或有善 或有惡 善者師之 惡者改之 吾心之樞機 門戶 道路 大於天地신 혹유선 ..

종교 비판 2024.09.20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의 뜻 / 단지불회 시즉견성의 뜻 /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의 뜻 / 지환즉리의 뜻

화두를 드는 간화선 수행은 바이러스가 강해지자 더 강력한 백신이 나온 것과 같은 것 [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7회]      心不在焉視而不見聽而不聞食而不知其味은 다들 스님의 해설과 같은 뜻으로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마는 그런 뜻이 아니다. 유교경전이 그런 시시한 걸 가르치려고 쓰인 책이 아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머니를 보아도 어머니란 걸 모르고 있는 상태에 살고 있으며 매일 죄(콜라 맛에(於此) 나 즉 심이 부재하므로 콜라 맛에 나 즉 심이 죄를 짓음)를 짓고 살고 있으며 寧日이 없는 고해 즉 지옥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것을 벗어나 내가 콜라를 먹고 있구나 라면 맛을 내가 안다 하는 경지(콜라味在於心인가?)에 이르러라. 내가 콜라 맛에 신(나 즉 심과 연결됨)이 들어간 것을 느껴..

연기법 인연법의, 나비효과와 사40:6~8과 태극진경 4장 90절과의 관계

이전 글         緣起· 因緣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하는 법칙이다. 아래 사40:6의 육체를 보라. 육(세상만사)과 영(大神. 아마 小神 여호와로 상징.)이 있다. 육의 이것(고아에게 부모가 없다) 저것(고아에게 국가의 지원이 있다) 안에 영의 이것(고아에게 부모가 없다)이 있으면 영의 저것(고아에게 국가의 지원이 있다)이 있고, 육의 이것(고아에게 부모가 없다) 저것(고아에게 국가의 지원이 있다) 안에 영의 이것(고아에게 부모가 없다)이 없으면 영의 저것(고아에게 국가의 지원이 있다)이 없고, 영의 이것(고아에게 부모가 없다) 저것(고아에게 국가의 지원이 있다) 안에 육의 이것(고아에게 부모가 없다)이 있으면 육의 저것(고아에게 국가의 지원이 있다)이 있고, 영의..

제행무상의 뜻 / 무안이비설신의의 뜻 / 금강경 비설소설분 해설 / 中和 해설 / 무인적막귀신세계의 뜻 / 적연부동과 감이수통의 뜻 / 불교의 제도와 기독교의 구원은 같은 뜻이다.

세상의 모든 학문은 불교 속에 다 담겨있다 [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4회]      무안이비설신의는 쉽다. 말 그대로 내 눈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자기 눈이 없다는 것(눈이 없는 장애인이라면 그의 장애가 없다는 허상 거짓)을 알아야 한다. 아래에 관련 예수 말씀이 있다. 부인 부정 불신은 태극으로서 진리에 필수이다.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 눈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 눈 있는 자이라 칭함을 받지 말라. 이것이 눈에 대하여 자기를 낮춤이다. 즉 내 육신의 눈이 내(그리스도. 영혼이라기보다는 영혼의 심리작용.) 안에 있는 것이 내가 높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없다고 해야 된다. 낮음과 높음이 연합하여 '낮아도 높음'이 이루어진다. 무안이비설신의해도 유안이비설신의..

기독교의 적그리스도는 유교의 소인이고 불교의 범부중생이다. / 말라기4장 해설 / 막13:11~13 해설 / 화둔공사· 매화공사(변산 같은 큰 불덩이)의 뜻 / 증산계 종교에서의 수기(水氣)의 뜻

이전 글   마가복음13: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13:3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13: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1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13: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13: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종교 비판 2024.09.19

약간의 예언들

미국과 프랑스가 어쩌고 하는 예언들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맞지 않을 예언들인 것 같다.  김영우의 전생여행새로운 진실은 처음엔 조롱당하고, 다음에는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며, 나중에는 마치 처음부터 자명했던 사...blog.naver.com 원: 누구를 우상화할 때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사람을 악하거나 선하거나 그 행위 때문에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죄가 만들어낸 허상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이것을 깨닫지 못하고는 영혼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출처] 김영우의 전생여행|작성자 아문       죄가 만들어낸 허상이란 것은 죄 안에 깃든 하나님과 하나 된 우리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이 허상은 우리가 죄를 속 싫어(하..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나의 생각 / 마13:52의 뜻

성선설과 성악설은 둘 다 장단점이 있는 학설이다.       격암유록에 보면 나를 죽이는 것은 小頭無足(귀신)이요 나를 살리는 것은 '三人一席'(修)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사람 마음에는 선과 악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가라지 비유, 그물 비유, 서기관의 곳간 비유). 증거는 김정은과 같은 사람과 예수와 같은 사람이다. 김정은은 오만하다. 예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 전자는 지옥과 악의 적그리스도이며 후자는 천국과 선의 그리스도이다. 악은 소두무족의 비진리이다. 선은 삼인일석의 진리이다. 닦을 수는 사실 비진리를 피하고 진리를 실행키 위해 노력함을 뜻한다. 비진리는 인자가 세상을(세상이 인자를은 생략) 사랑하고(세상에게서 살림받고: 생) 미워하고(세상에게서 죽임받고: 사) 세상에게서 사랑받고(세상을 살리고:..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의 뜻 / 요11:25, 26의 뜻 /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의 뜻 / 대병지약 안심안신의 뜻 / 선지후각의 뜻? / 마7:21 뜻 / 도전 2:21:5의 뜻 /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의 뜻

불도유가 아니라 유불선? 유교를 불교 앞에 썼던 탄허스님만의 이유 [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3회]       學而時習之不亦說乎는 비유일 것이다. 아래 무극진경 9장 3절의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은 생사판단(取生捨死)인데 다음의 예수 말씀과 동일한 뜻이니 절대 모르지 말아라. 아래의 대병(비유. 그렇지만 실존함.)이 우리의 관심사이다. 소병(실제)은 의사한테 맡기라고 아래의 글에 적혀 있다. 우리 수도자들의 소관이 아니다. 안심안신에서 心은 神과 연결된 우리 영혼들이고 身은 삼계우주이다. 그것들이 불안한 것이 병들인데 그걸 고치면 안심안신하다. 학을 (불교의) 각이라 하는 건 나는 반대한다. 각은 일회성이지만 학의 실행횟수는 때때로 즉 영원하고 無窮不..

일용할 양식의 뜻 / 희로애락지미발위지중 발이개중절위지화의 뜻

"나는 스스로 내 글을 쓰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탄허스님의 숨겨진 사상을 녹취록으로 세상에 알린 문광스님 [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2]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를 내가 풀기를, 희로애락을 발하지 않는 것이 중이다 발하되 다 중에 맞는 것을 화라고 한다이다. 중과 화는 같은 뜻이다. 발함은 겉으로 발함이고, 발하지 않음은 속으로 발하지 않음이다. 속으로 발하면 즉 속으로 개불중절하면 이는 겉으로 발하든 겉으로 불발하든 속으로 非中和이다. 속으로 미발하면 즉 속으로 개중절하면, 겉으로 발하든 겉으로 불발하든 이는 속으로 중화이다. 중은 먹음과 굶음의 합일이고, 和는 먹음이거나 “먹음과 굶음의 합일”이다. 隨時處中은, 언제나 늘 영원히 일상생활에 日日平均二十四時에 중에 처하라는 ..